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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이야기

600년의 대화(1)

     

    9시 경복궁이 문을 열면서 경복궁에 다녀왔다.

     

     

    경복궁(景福宮)은 조선 왕조의 법궁(法宮, 정궁)이다

     

     

    우리가 경복궁 관람을 위해 매표소에서 표를 사서 입장하는 문이 '흥례문'이다.

    흥례문(興禮門)은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과 근정전의 정문인 근정문 사이에 있는 중문.

     

     

    경복궁의 금천교로, 흥례문을 들어서서 정전인 근정문으로 가기 위해서 건너야 하는 다리인 영제교(永濟橋)

     

     

    영제교 아래를 굽어보고 있는 해태 모양의 석상

    '경복궁유람기'는 이를 천록이라고 적혀있다고 한다.

     

     

    근정전은 1395년 경복궁이 창건되면서 지어진 건물로, 역대 국왕의 즉위식 등이 거행된 조선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이다

    이곳의 박석(화강암)햇빛에 의한 반사로 눈부심 효과를 줄이거나, 비가 왔을 때 배수가 원활하게 해준다고..

    지난밤 제법 비가 내렸는데 근정전 마당에는 물이 고여있지 않다.

    근정전 마당은 남쪽에 비해 북쪽이 1m정도 높고 이만큼 근정전의 기둥 높이를 세심하게 조절했다고...

    즉 마당이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있다는 것..

     

     

    원래 경복궁 내에는 위험 요소를 방지하기 위해 쇠붙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이 곳만은 예외였다

    이 고리는 국가적인 행사를 거행하는데 있어서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기 위해 치던 천막 고리라고 한다.

    이 고리는 녹슬지 않게 들기름에 구워졌다고 한다.

     

     

    돌 기단을 월대(月臺)라고 하는데, 근정전 월대 난간의 조각들은 십이지신.

    근정전과 경복궁을 지켜달라는 염원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조각들은 서수(瑞獸·상서로운 동물)들을 표현한 것이라 개, 돼지는 빠졌다고 한다.(개,돼지만도 못하다...)

     

     

    근정전 한가운데엔 임금이 앉는 용상이 있고, 그 뒤로 일월오봉병(日月五峯屛)이 놓여 있다.

     

     

    천장에는 여의주를 문 채 힘차게 꿈틀거리고 있는 용 두 마리가 조각되어 있다.(용은 왕을 상징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황룡은 발톱이 7개인 칠조룡이다.

    본래 왕의 용은 발톱이 5개다. 황제의 용만 7개다. 조선의 임금을 중국 황제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은 것..

     

     

    경복궁은 건물들이 일정한 형태로 나란히 서 있었다, 근정전에 이어 사정전

    왕과 신하가 나라의 중요한 일을 논의하던 곳이다

    사정전 안에는 나무가 없는데, 곤궁할 곤(困)자가 돼 나라가 곤궁해질 수 있다는 의미가 있었다고...

    또 왕을 암살하기 위한 자객이나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나무에 숨어들 수 있어 적게 심은 이유도 있다고...


     

    사정전 이 향로는 청나라가 왕실에 보내온 선물이라고...

     

     

    사정전을 지나면 왕이 평상시에 머무르던 '강녕전'이 있다.

    왕은 이곳에서 독서를 하거나 휴식을 취했고 신하들과 정무를 보기도 했다고 한다.

     

     

    강녕전 북쪽에는 왕비가 머무르던 교태전이 있다

    교태전과 강녕전에는 지붕 중앙에 사용되는 장식인 용마루가 없다.

    왕이 곧 용이므로 용 위에 다시 용(제왕을 상징하는 동물)을 둘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왕비의 생활 공간 교태전은 궁궐에서 가장 깊숙하고 중심이 되는 위치에 있어서 가운데 중(中) 을 써서 중궁전 이라고도 했다고..

    이곳에서 아미산이라 불리는 후원을 볼 수 있다.

     

     

     

    창문 넘어 여성스럽게 꽃무늬로 치장된 굴뚝과 꽃담들이 아름답다.

     

     

    한글을 발명한 장소인 집현전은 경회루 근처인 수정전 자리에 있다.

    고종때 만들어진 수정전은 다른 궁궐 내 건물에서 볼 수 없는 넓은 월대(月臺)를 갖춘 것이 특징이다.

    이는 임금의 출입이 자주 있는 편전임을 의미한다

     

     

    경회루

    근정전 서북쪽에 있는 방형 연못 안에 세운 이 건물은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 연회를 베풀기 위한 곳이었다

     

     

    경회루로 들어가는 세 개의 돌다리를 설치하였는데...

    그중 남쪽에 있는 것은 다른 두 개의 돌다리보다 폭을 넓게 하고, 어도를 두어 왕이 출입할 수 있도록 했다

     

     

    하늘에 떠도는 잡귀를 물리치는 잡상은 건물의 품격에 따라 수(5~11개)를 달리했다.

    일반 건물에는 보통 5개를 올리지만 숭례문에 9개, 경복궁 내 경회루에는 11개가 있다

    다른 곳보다 경회루의 잡상이 많은 이유는, 경회루가 청나라 사신들을 위해 연회를 베풀던 곳이기 때문이라고...

    당시 청나라 사신들은 연회를 베푸는 장소의 처마마루 잡상의 수가 적으면 자신들을 홀대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생트집을 잡았기 때문에 경복궁 내에서 가장 많은 잡상을 설치했다고...

     

     

    문 밑에 십자로 구멍이 나있는 것은 풍혈이라고 해서 바람이 통하는 통기구라고 한다,

    풍혈이 보이면 마루방, 풍혈이 보이지 않으면 온돌방이라고..

     

     

    자세히 보면 그물 같은 것들이 보이는데, 이를 '부시'라고 했다.

    새들이 단청을 훼손하는 것을 막고자 설치했는데, 옛날에는 명주를 꼬아 만들었지만 지금은 철 줄을 꼬아 설치했다.

     

     

    새들이 집을 지으면 나무로 지은 건물이 쉽게 썩을 수가 있어서 그물을 치기 힘든 처마 밑에는 삼지창을 꽂았다고..

     

     

     

    궁중 연회때나 제례에 쓰이는 장을 보관하는醬庫 출입문인 禮成門에 인줄을 쳐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그 앞에 연못을 파고, 연못 가운데 섬을 만들어 정자를 지었는데 이것이 향원지와 향원정이다

     

     

     

     

     

    향원지 모서리에 '열상진원'이라고 쓰인 샘을 발견할 수 있다.

     

     

    경복궁의 제일 북쪽 신무문(神武門) 안 동쪽에 있는 고종의 서재(書齋)인 집옥재(集玉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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