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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아시아

북간도 5박6일(4)

     

    전날 우리는 연길에서 묵었는데, 대부분의 조선족 도시에는 저렇게 우리말 간판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중 드물게 조선족은 고유의 언어인 우리말을 지키고 있다.
    저런 우리말 간판은 아마도 중국의 소수민족 유화 정책이 이를 허용하기 때문인 것 같다

     

     

    30여분 거리인 용정으로 가는 길도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다.

     

     

    어릴때 시골 우리 동네같은 아늑한 마을, 명동촌에 도착하였다.

    명동(明東)촌은 동을 밝힌다는 즉 조선민족의 밝은 사회를 건설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명동촌은 조선족 동포들이 만든 첫 마을이며 지금도 명동촌 호적에는 조선족 동포들만 올라있다고 한다.

    *촌(村)은 중국의 최소 자치조직 행정구역인셈이다.(우리로 치면 읍면동)

     

     

    이날 진료를 했던 곳이다.

    에그...간판의 명동촌 한글이 여기저기 떨어져나가고, 한문도 간자체로 씌여있어 모르고 가면 몰라볼뻔...

     

     

    미리미리 점검한다고 했는데도, 약싸는 기구(?)를 못챙겼단다.

    필요하면 생각이 떠오른다고, 빳빳한 약상자를 펼쳐 아쉬운대로 만들었다. 9구,6구,3구짜리 제대로..^^

     

     

    중국에서 유학한 간사님은 접수를 맡고...

    조선족인데도 우리말을 못하는 분도 있었고, 사용하는 단어가 달라 가끔 의사소통이 잘 안되기도 했다.

    진료를 했던 남편도 우리말이 익숙한 조선족 기사님 도움을 받아야 할때가 있었다.

    통일이 되면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겠지만, 단어의 통일 또한 시급할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지난봄 명동촌에 2~3팀의 검은손들이 다녀갔단다.

    손톱만큼의 선심을 베풀고 효과없는 고가의 약을 파는 검은 손...

    우리날 시골에서도 안통해서 이제는 중국 조선족에게 까지 검은손을 펼쳤는지...

    이날도 아무리 촌장님이 잘 이야기해도 또 약팔러 오는줄 알고 예상보다 환자분들이 적게 왔다.

    덕분에(?) 남편은 꼼꼼하고 천천히 진료를 할 수 있었고....

    처방전이 필요없는 약들(진통제,소화제,무좀연고,피부약,영양제,소독약,밴드...)을 넉넉히 드렸다.

    다녀가신 분들은 2년마다 오겠다고 하니, 해마다 왔으면 좋겠고, 매일오면 더 좋겠다고...

     

     

    약을 기다리는 분들에게 수동 마사지기구로 안마도 해드리며 말친구도 해드리고...

     

     

     

     

     

     

     

    점심은 촌장님댁에서 준비해주셨다.

    송이밥에 맛있는 나물들과 토종닭...^^

     

     

    그곳에는 여름감자는 물론 가을감자도 난다며 김 보슬보슬나게 삶아주신 감자는 너무 맛있었다.

     

     

    1900년 용정에 지어졌던 윤동주의 생가를 2012년 새로 복원하고 중요 문화재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고...

    그런데 입구의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 윤동주'라는 글귀가 가슴 아프다.

    윤동주 시인의 원적은 함경북도 회령이며, 북간도로 이주한 것일 뿐 이민을 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중국 국적의 시인이라는 것은 새로운 형태의 동북공정이란 느낌이 든다.

     

     

    예전 모습 그대로인 이 명동교회는 1909년 두만강변의 함경북도 종성에서 이민을 왔던 분들이

    8칸의 집을 사서 예배당으로 사용하다가 1916년 김약연(윤동주의 외삼촌) 목사를 중심으로

    성도들이 현재의 예배당을 지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간도에 명동촌과 명동학교를 세워 민족교육을 개척했던 '선각자' 김약연

    "나의 모든 행동이 곧 나의 유언이다."..김약연 목사님의 유언이다. 

     

     

    윤동주 시인이 남긴 대표적 시인 '서시(序詩)'

     

     

    복원된 생가와 저위의 우물은 원래 터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고 한다.

     

     

    윤동주시인을 생각하며 생가앞에서 한장...

     

     

    고향집

      

    헌 짚신짝 끄을고

    나 여기 왜 왔노

    두만강을 건너서

    쓸쓸한 이 땅에

      

    남쪽 하늘 저 밑에

    따뜻한 내 고향

    내 어머니 계신 곳

    그리운 고향집

    .........................................

     

    남쪽 하늘 저 밑에 따뜻한 내 고향...

    윤동주 시인은 분명 우리나라 사람이었다.

     

     

    두만강 푸른 물은 아니지만 두만강과 북한 땅이 코앞에 보이는 도문으로 가는 길... 

     

     

     

    정말 외쳐부르면 대답할 것 같은 지척이 북한땅이었다.

     

     

    나무들도 헐벗고....

     

     

    이렇게 견고한 철조망으로 갈수 없는 땅...

     

     

    길을 잘못들어 도문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북한을 가까운 곳에서 본걸로 만족하고 돌아왔다.

     

     

    노란지붕이 아니라, 지붕위에 옥수수를 말리는 중이라고...^^

     

     

    이날 아침 용정으로 가는 길에 사과배(사과와 배를 접해 만든 과일)가 맛있다기에 1상자를 샀다.

    1상자의 값이 80원이었는데, 우리가 다닌곳들 식사가 10원 정도였으니 약간 비싼편...

    그런데 한참을 가다 생각하니 덤을 받는등 어수선한 틈에 사과배값을 안준것 같다고...

    해도 지고 어둑어둑 돌아오는 길에 사과배값을 주기로 했는데, 이미 불이 다 꺼져 있었다.

    기사님이 옆에 움막 같은게 있었는데, 혹시 있지 않겠냐며 차를 돌려주었다.

    정말 두부부가 불도 없는 움막에서 식사를 하고 계시다가 우리때문에 놀라셨다.

    하루종일 마음이 불편하셨는데 너무 고맙다며 괜찮다는데도 과일들을 듬뿍 챙겨주셨다.

    우리도 마음 한편 불편했던 마음들을 내려 놓을 수 있었고, 맛있게 사과배를 먹을 수 있었다.

    남은 사과배는 기사님도 드리고 각각 1개씩 수하물에 부쳐(원칙적으로 안되는줄 안다) 갖고 왔다.

     

     

    입으로 전도함만큼 삶의 전도도 중요하단 생각이다.

    사과배 부부나 믿음이 없는 기사님에게 겨자씨만한 전도의 씨앗이 심겨졌으리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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