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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이야기

승광재에서 잠을 자다

     

    전주에는 괜찮은(?) 호텔이 별로 없다.

    전주 코아 리베라 호텔이 있는데 비싼 편이고, 전주 한옥마을에서 묵어보기로 하고

    인터넷을 통해 황손 후원회에서 운영하는 생활체험관 '승광재'를 예약했다.

     

     

    우리가 묵었던 방 이름..

    대부분의 전주 한옥마을 숙박업소의 숙박 요금은 2인 기준으로 5만∼10만원..

    개별화장실인지, 공동화장실인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고, 조식 포함인 곳도 있다.

    체험 숙박이라 생각하면 나름 의미가 있지만 너무 큰 기대를 하면 안된다.^^

    http://www.hanokmaeul.com/

     

     

    우리가 묵었던 승광재는 보일러방과 장작불방 2가지가 있는데..

    장작불방을 예약했더니 미리 준비해두셔서 방바닥이 절절 끓고 있었다

    에효 근데 외풍은 어쩔수가 없는지 코가 시렸던 밤^^

     

     

    장작불에 집에서 미리 준비해간, 호일에 싼 고구마를 넣어 두고 잤더니 요렇게..^^

     

     

     

    ㅎㅎㅎ자물쇠를 보시라.

     

     

    아침 일찍 숙박업소 주변을 둘러 보았다.

    저기 중간 왼쪽의 검은 신발이 남편 신발..우리가 묵었던 방이다.

    화장실이 실내에 있어서 그나마 다행.

     

     

     

     

    2004년..

    고종의 3남 의친왕 이강(李堈)의 11번째 아들인 가수 이석씨에게 전주시에서 마련해 준 거처라고 한다.

    이곳의 수익금으로 이석씨를 돕고 있다고 하며, 이석씨는 주말에는 이곳에 내려와 기거한다고..

     

    http://blog.chosun.com/servlet/DownLoad/hahahoho003.wma?attachmentId=767022

    (누르시면 추억의 노래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승광재는 설예원이란 곳과 대문을 같이 하고 있었다. 

     

     

    설예원은 전통생활문화교육관으로서 생활예절, 다도예절등 우리 전통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며

    청소년과 외국인들에게 우리의 문화를 알리는 생활문화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체험관이다.

     

     

     

    "이리 오너라~~"하고 외치지 않아도 금새 누군가 달려 나올 것 같은 곳..

    대문에는 언제 붙여 놓았는지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 붙어 있고..

    ‘건양다경(建陽多慶)’은 그 당시 국태민안(國泰民安: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함)을 기원하는 뜻에서

    집집마다 써서 붙였다고 한다.

     

     

     

    추운 날씨로 사람 흔적도 드문 아침, 전주 한옥 마을을 둘러보았다.

     

    을사조약(1905년)이후 대거 전주에 들어오게 된 일본인들이 처음 거주하게 된 곳은 서문밖,

    지금의 다가동 근처의 전주천변이었다.

    서문밖은 주로 천민이나 상인들의 거주지역으로 당시 성안과 성밖은 엄연한 신분의 차이가 있었다.

    성곽은 계급의 차이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존재했던 것이다.

    양곡수송을 위해 전군가도(全群街道)가 개설(1907년)되면서 성곽의 서반부가 강제 철거 되었고,

    1911년말 성곽 동반부가 남문을 제외하고 모두 철거됨으로써 전주부성의 자취는 사라졌다. 
    이는 일본인들에게 성안으로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으며,

    실제로 서문 근처에서 행상을 하던 일본인들이 다가동과 중앙동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이후 1934년까지 3차에 걸친 시구개정(市區改正)에 의하여 전주의 거리가 격자화되고 상권이 형성되면서,

    서문일대에서만 번성하던 일본 상인들이 전주 최대의 상권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상황은 1945년까지 지속되었다. 
    1930년 전후로 일본인의 세력확장에 대한 반발로 한국인들은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는 일본인 주택에 대한 대립의식과 민족적 자긍심의 발로였다.

    1930년대에 형성된 교동, 풍남동의 한옥군은 일본식과 대조되고 화산동의 양풍(洋風) 선교사촌과

    학교, 교회당 등과 어울려 기묘한 도시색을 연출하게 되었다.

    오목대에서 바라보면 팔작지붕의 휘영청 늘어진 곡선의 용마루가 즐비한 명물이

    바로 교동, 풍남동의 한옥마을인 것이다.

     

     

     

    아세헌(雅世軒)은 '아름다운 사람들의 집’ 혹은 ‘우아한 세상의 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전통 한국음악체험교육관으로서 판소리, 가야금, 가야금병창 등 우리 전통음악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

     

     

    풍남헌은 1935년 건립된 건물로써 한옥의 아름다운 선과 멋을 잘 간직하고 있는 전통 고택으로

    시원스런 잔디마당과 담장아래 차나무가 잘 어우러진 한옥생활체험공간이다

     

     

     

     

     

    전주 한옥생활체험관은 조선시대 양반집을 연상케 하는 곳으로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행랑채와 안마당,

    사랑마당이 갖추어진 전통한옥으로 이곳 역시 전통숙박체험도 가능한 곳이다.

     

     

    세화문(世化門)

    ‘전통의 삶과 지혜를 오늘에 살려 세상을 바르고 좋은 풍속으로 변화시키는 문’으로

    아름다운 풍속을 세상에 전하여 이 시대에 맞는 좋은 풍속으로 변화시켜 실생활에서 활용한다는 뜻이란다. 

     

     

     

     

    전주최씨종대(全州崔氏宗垈)

    宗垈라는 말은 잘 쓰지 않으나, 한 종족이 대대로 지켜온 터전을 말한다고 한다.

    즉 이곳이 경주 최씨의 발상지인 셈.

     

     

    이 나무는 수령이 600년이나 된 것으로 알려진 은행나무

    이 은행나무는 고려 우왕 9년(1383) 최담 선생이 낙향한 뒤에 심은 것으로만 알려져 있다고 한다.

    자세히 보면 가는 은행나무가 보이는데, 지난 2005년 나무 밑동에서 새로운 싹이 터 자라고 있어

    사람들은 이 나무를 600년 노거수의 후계목이라고 부른다고..

     

     

    '해우소'..어디인지 아시지요?^^

     

     

     

    전주 한옥마을의 숙박이 가능한 체험관이 주로 몰려 있는 골목의 '네거리 슈퍼'와 '새서울 미용실'이

    왠지 오래전 풍경같이 느껴졌다.^^

     

     

    모든 것이 꽁꽁 얼었는데 너네들은 왠일이니? 했더니...

    연못에서 김이 모락모락..아마도 온수 공급이 되나보다.

     

     

    숙아..니네 집인가보다 ㅋㅋ

     

     

    너무 추워 차한잔 마시려했더니 편의점밖에 문 연 곳이 없었다.

    이미 빵과 사과로 아침을 먹은 뒤라 추위를 녹여줄 따뜻한 캔커피나 살려고 들어갔는데..

    그럴줄 알았지..

    커피는 물론 물부어 먹는 떡볶이,오뎅,야채호빵까지..에효.. 

     

     

    아무튼 차한잔의 즐거움..

    빨리 갑시다 여보^^

    서울에 절대 약속에 늦어서는 안될 일이 있기에 서둘러 전주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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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고종과 의친왕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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