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세미나가 저녁이라 일찍 도착해 호텔에 짐을 두고 나섰다.
우연히 찍은 사진이었지만...
舊 인천우체국으로 시유형문화재 제8호인 건물.
일본인의 우편사무를 취급하기 위해 일본 영사관내에 우체국을 설치한후 1923년 지금 위치에 신축했다고..
ㄱ 자 평면에 모퉁이 부문을 돌출시켜 입구를 강조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현재는 중동 우체국이란다.
인천 월미도에 있는 한국이민사박물관을 찾았다.
이민사박물관은 미주 이민 200주년을 맞아 2008년 건립했다고 한다.
그곳에는 구한말 미국으로 떠난 이민 1세대의 고단한 삶을 엿볼 수 있는 단편적인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기 위해 1902년 제물포항을 떠난 102명은 해외이민의 개척자였다.
지금이야 미국에만 250만 명이 살고 있지만 당시 미국행은 인생을 건 도박이었다.
박물관 벽에는 미국 이민 초기에 떠난 7415명의 영문 이름이 동판에 빼곡히 새겨져 있다.
한국인의 하와이 이민 과정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미국 공사이자 선교사인 알렌(H.N.Allen)의 활동이다.
그는 1884년 조선에 도착한 이후 고종 황제의 주치의로 발탁되어 황실의 신망을 얻었고,
이로 인해 조선의 정치 문제에 깊이 간여하여 양국 정부 간의 핵심적인 중재자로 큰 역할을 하였다.
알렌은 이민 관련 업무에 데쉴러를 추천하였고 데쉴러는 고종 황제로부터 하와이 이민 사업의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1902년 12월 22일 월요일, 하와이 첫 이민단 121명이 인천 제물포에서 일본우선회사 현해환(겐카이마루)에 승선,
일본 나가사키 항을 향해 2일간의 항해에 올랐다.
가족 친지들과 눈물의 이별을 한 이들은 12월 24일 나가사키 항에 도착하여 검역소에서 신체검사와 예방접종을 받고,
하와이로 가는 미국 태평양 횡단 기선 갤릭호(S.S Gaelic)에 탑승했다.
처음 121명이 인천 제물포를 떠났으나 일본 나가사키에서 신체검사를 받고 19명이 탈락,
102명만이 갤릭호(S.S Gaelic)를 타고 1903년 1월 13일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1904년 대한제국에서 발급한 여권 '집조'라고 한다.
그 당시 이민자들 노총각들은 사진으로만 보고 고국에서 신부를 만나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어려운 환경에서도 그들 또한 강인하고 적극적인 삶을 꾸려나갔다고 한다.
1905년 4월 30일 설립된 하와이의 에바 한인감리교회
그때 사용되었던 성경들..
타자기..
전화기..
담배상자와 파이프
양팔저울과 저울추
축음기
이민사 박물관은 크게 4개의 전시실로 되어 있었는데..
1.미지의 세계로-이민 출발지였던 개항 당시 인천, 갤릭호 모형등 초기 하와이 이주 모습
2.극복과 정착-하와이에 정착한 한인의들의 애환과 발자취
3.또 다른 삶과 구국 염원-중남미로 떠난 한인드르이 삶
4.세계속의 대한인-전 세계 각국으로 진출한 700만 해외동포의 근황과 염원
입장료도 없었고, 나름 우리나라 이민사에 대해 흥미로운 박물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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