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남편이 일이 있어 시간이 흐르는 곳, 전주에 같이 다녀왔다.
남편 세미나가 12시까지 가야되서 일찍 집을 나섰다.
10시반경 전주에 도착하여 몇군데 구경을 하였다.
16년전쯤 전주에 2년이나 살았었는데도 못가본..^^
▒ 전동 성당
전동성당은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이 1791년 신해박해 때에 처형당한
풍남문(豊南門)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건립됐다
1907년부터 1914년에 걸쳐 세워진 전동성당은 순교지를 보존하고 있는 신앙의 요람이라고 한다.
처형지인 풍남문 성벽을 헐어 낸 돌로 성당 주춧돌을 세웠다고 한다
이 성당은 호남 최초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서양식 건물이라고 한다.
곡선미를 최대로 살린 로마네스크 및 비잔틴 양식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이
동양에서 제일가는 성당건물 중의 하나라고...
1988년 화재로 일부 소실되기도 했다고..
내부는 화려했지만, 멀리서 보면 소박하고 아담한 성당이었다.
▒ 경기전
경기전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영정을 모신 전각이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3가 102번지 풍남문으로부터 동쪽으로 약 150m 정도 거리에 있다.
(전동 성당 건너편이고 전주 한옥마을 근처)
전주는 조선왕조의 발상지이며 경기전은 그 탯자리.
조선조 서거정은 <공북루기(拱北樓記)>에서 '아조선근본지지(我朝鮮根本之地)'로 불러
전주를 '상서로운 곳'으로 높였다고 한다.
경기전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해 태조의 아들인 이조 3대왕인 태종10년에 건축되었다고...
태조의영정을 모신이유는 조선건국이래 왕가의 권위를 세우고 왕기를 공고히 하기위함이라고 한다.
오래된 전통의 도시로서의 느낌과 기품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곳이다.
이곳이 이성계의 영정을 모신 곳..
▒ 최명희 문학관
경기전 근처의 길..'최명희 길'이었다.
대하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 이름을 따서 길 이름으로 지은 것..
작가 최명희의 문학을 체계적으로 정리 보존한 최명희 문학관을 찾아갔다.
소설가 김벙룡 교수와 작가 최기우씨가 지곳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한옥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고(故) 최명희(1947~1998)선생은 '생(生)을 다해' 대하소설 <혼불>을 썼다고 한다.
'혼불'은 1930년대 전라남도 남원을 배경으로 하고있다.
몰락해가는 양반가 3대의 이야기로 1980년부터 1996년까지 집필한 10권의 대하소설.
선생은 1998년 작고하였다고 한다.
최명희 그녀는 전주를 '꽃심의 땅'으로 불렀다고 한다.
꽃의 심(心),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면서, 기운을 다해 '꼿꼿이' 버텨온 땅이 전주
동학혁명의 중심지역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자치기구인 집강소가 설치되었던,
자유와 평등의 '꽃'이 한때 피었던 곳이 전주라고 했다고..
▒ 풍남문
남편은 세미나로, 난 만나고픈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에 차를 잠깐 세워 찍은 풍남문^^
전주를 상징하고 있는 풍남문은 원래 전주부성의 4대문 가운데 남문으로 고려 공양왕 원년인
서기 1398년에 전라관찰사 최유경이 전주부성과 함께 창건했다고 한다.
1905년 전주부성 4대문중 풍남문만 제외한 3대문이 동시에 철거되는 수난을 겪었다고..
1980년 종각과 포루, 풍남문 바깥쪽 출성인 옹성을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찾았다고 한다.
풍남문은 천주교 순교자들의 목이 효수되었던 곳이며, 동학혁명군이 전주성에 입성한 관문이기도 하다고...
위의 지도를 보시다시피...
전동성당, 경기전, 최명희 문학관, 풍남문, 한옥마을이 다 가까운 거리에 있다.
우리는 전동성당에 주차를 하고 전동성당-경기전-최명희 문학관을 구경했고
승광재 앞에 주차를 하고 잔 후, 다음날 일찍 한옥마을을 둘러보았다.
자세히 보려면 끝이 없지만, 반나절 내지 하루면 충분히 구경할 수 있다.
'달빛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승광재에서 잠을 자다 (0) | 2010.01.17 |
---|---|
전주에 가면... (0) | 2010.01.16 |
이민사 박물관 (0) | 2010.01.11 |
신라 밀레니엄 파크(4) (0) | 2009.11.02 |
신라 밀레니엄 파크(3) (0) | 2009.1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