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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행이야기

서울의 몽마르뜨르

     

    오늘도 도보관광을 하고 왔다. 낙산성곽 코스

    동대문~낙산 성곽 탐방로를 따라 '서울의 몽마르뜨'라 불리우는 낙산공원에 오르고,
    초대 대통령 내외의 사저였던 이화장까지 관람하는 코스이다.

     

     

    일단 서울의 4대산, 4대문과 4소문을 공부하고 출발!

     

    동대문(흥인지문, 興仁之門)
    1396년(태조 5년) 건립된 한양도성 4대문중 하나로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2층 건물로

    도성의 8개 성문 중 유일하게 반달 모양의 옹성(壅城)으로 둘러져 있다.


     

     

    한양도성 4대문과 4소문의 이름은 모두 세 글자인데 유독 흥인지문만 네 글자이다.

    이는 낙산이 낮아 기운이 약해 이름에 산맥을 뜻하는 '갈 지(之)' 자를 넣어 좌청룡의 약한 기운을 보강했다고

     

     

    동대문 천정의 (좌)청룡 그림

     

     

    동대문 옆으로 보이는 교회는 동대문 교회

    1891년에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인 동대문부인진료소의 기도처로 시작된 교회이다.

     

    한양도성
    이화병원에서 낙산공원까지 이어지는 성벽은 조선시대 성 쌓는 기술의 변화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태조와 세종, 숙종때 쌓은 성벽의 다른 모습

     

     

    각 구간을 어느 지역에서 쌓았는지는 나타내는 글자 '각자성석'(성곽 돌에 축성 관련 글을 새겨 넣은 것)

    쉽게 말하면 공사 실명제인셈...

     

     

    동대문 교회

    HB 헐버트 박사, 손정도 목사 등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한국의 근대화와 독립운동에 기여했던 인물들이 활동한,

    세계 최초 'ㄱ'자형 예배당이며 국내에서 제일 오래된 와가 예배당이 존재하고 있는 교회이다.

    서울시는 현재 동대문교회 부지를 공원화하기로 결정하고 철거를 진행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최근 서울시가 교회의 역사성을 유지하는 방안을 감리교단과 협의중이라고 한다.

    오늘 해설사는 교회의 철거,이전 반대를 기독교의 횡포인듯 설명했지만...

    동대문 교회는 기독교의 역사의 현장이자 분명 문화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 동대문교회의초기모습(1900년대초-흑백) Easter Gate Church Seoul과 주변 모습이 분명하게 보인다.

    사진상 오른쪽 끝에 잘려서 보이는 건물이 스크랜튼의 시약소이자 예배당으로 사용하던 건물로 추측되고 있다.

    이 사진은 카나다의 박준하로 부터 입수했다고 한다. ⓒ 당당뉴스DB

     

     

    원래 암문(暗門)은 성곽의 후미진 곳이나 깊숙한 곳에 적이 알지 못하게 만드는 비밀 출입구다

    하지만 지금 한양도성에 있는 암문들은 조신시대 암문이 아니라 성곽 안팎을 쉽게 드나들도록 복원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비우당(庇雨堂)

    '겨우 비만 가릴 수 있는 집'이란 의미라고 한다.

     

     

    조선 세종 때 청백리의 상징인 ‘하정 유관’ 선생(이수광의 외가5대 할아버지)이 살았던 집으로

    이수광은 이 집에서 지봉유설 을 집필했다.(현재 남은 것은 현대에 와서 복원한 것이다.)

     

     

     

    비우당 옆으로는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 송씨가 비단을 빨면 자주색으로 물들었다는 자주동샘 터가 있다.

     

     

    산 라인을 방해하는 아파트..앞으로는 한성대가 보인다.

     

     

    낙산(駱駝)공원

    서쪽 인왕산과 동서로 마주한 해발 125m의 낙산은 종로구와 성북구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산 전체가 화강암인 돌산으로, 생긴 모양이 낙타 등처럼 생겨 '낙타산'으로도 불린다.

    풍수지리상 주산인 북악산의 좌청룡에 해당한다.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 남주작(南朱雀), 북현무(北玄武)

    저 위에 동대문이 동쪽에 있으니 오른쪽인듯 한데, 낙산 또한 동쪽이니 오른쪽인데, 왜 좌청룡(左靑龍)일까?

     

    임금이 앉은 북쪽에서 보면, 왼쪽이 동쪽이 되고 오른쪽은 서쪽이 된다.

    해가 뜨는 곳이 동쪽이고 지는 곳이 서쪽이다.

    이렇게 되면 자연 왕의 좌측인 동쪽이 먼저가 되고 우측인 서쪽이 뒤가 된다
    그래서 품계석에도 임금이 앉은 기준으로 좌에는 문신(동반)이 우에는 무신(서반)이 서게 된다.
     

     

     

    요 낙산공원 근처에서 드라마 촬영을 많이 한단다.

    오른쪽의 집도 얼마전 '못난이 주의보'에서 4남매의 집으로 나왔다고...

     


    조정석이 유명해진 '더킹 투하츠'의 한장면도 이곳 낙산공원..

     

     

     

    홍덕이밭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한 후 아들인 봉림대군(효종)이 볼모로 잡혀 심양에 있을 당시

    나인 홍덕이가 직접 가꾼 채소로 김치를 담가 효종에게 드렸다고 한다.

    조선으로 돌아온 후에도 홍덕이의 김치 맛을 잊을 수 없어 낙산 중턱의 채소밭을 홍덕이에게 주어

    김치를 올리게 했다 하여 이름 붙은 곳이라고 한다.

     

     

    경천애인(敬天愛人)비는 이승만 대통령 친필로 쓴 것인데 이화장 뒷산(낙산)을 오르는 길옆 에 세워져있다

    敬天愛人은 이승만 대통령의 좌우명이었다고..

     

     

    이화장(梨花莊)

    이화동 낙산 기슭에 위치한 이화장은 이승만 대통령이 1947년부터 살았던 작은 기와집이다.

     

     

    1948년 7월에는 이곳에서 대한민국 초대 내각을 발표하기도 했다.

    남편과 함께 하와이로 망명을 떠났던 프란체스카 여사는 1970년 돌아와 1992년 이곳에서 여생을 마쳤다.

    부부가 기거했던 한옥은 1988년 기념관으로 개장, 고인의 유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화장은 현재 관람 불가.

    2011년 폭우로 담이 허물어져 복구 공사를 하고 있다.

     

     

    이화장 앞에 2014년 10월까지 수해 복구 공사로 휴관이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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