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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이야기

정길동이 후원에 뜨다.

 

월요일 창덕궁 '후원'예약페이지를 보다가 화요일 3시 두자리가 뜨길래 얼른 예약

어제 중보기도후 모권사님과 다녀왔다.

사실은 요즘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때문에 마음에 줄이 많이 가서 힐링을 위해..

 

600년 세월을 든든히 버티고 있는 금천교를 지나서 창덕궁으로...

 

 

낙선재는 1847년(헌종 13년)후궁 김씨의 처소로 지어졌다

고종황제 둘째 아들인 영왕의 부인 이방자 여사와 고종황제의 딸인 덕혜옹주

그리고 마지막 황후 윤씨가 기거하였던 곳이다.

 

 

단청을 하지 않은 소박함과 아름다운 꽃계단, 꽃담, 다채로운 창살들의 화려함도 갖고 있는 곳이다.

 

 

성정각의 누각인데 성정각은 세자가 서연(書筵 : 학자들과 유교 경전을 공부)하던 곳이다.
성정각 뒤의 관물헌은 갑신정변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원래 내의원은 인정전 서쪽에 있었는데 1910년 대부터 성정각을 내의원으로 이용하였다고...

 

 

후원관람을 위해 창덕궁의 다른 곳은 나중에 다시 오기로...

후원이 시작되는 길...

 

 

후원에서 처음 만나는 연못이 부용지이다.(부용은 ‘연꽃’을 뜻한다)

부용지는 34.5m, 29.4m에 르는 네모 반듯한 연못으로, 중앙에 소나무를 심은 인공섬이 있다

 

 

부용지 연못 한쪽 모서리를 자세히 보면 물고기가 새겨져 있다.

이는 물고기가 물이 없으면 못살듯 임금이 없는 백성은 있을 수 없고

백성이 없는 임금은 있을 수 없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부용정 맞은편의 어수문을 지나 주합루(2층)와 규장각(1층)

 

 

드라마의 과거 시험의 무대로 등장하는 영화당

실제로 과거 시험을 보는 장소였고, 임금님께서 친히 군사 훈련을 주관하던 곳이다.

(40여년전 인근 중학교 다닐때, 부용지와 이 근처에서 사생대회하던 기억들..^^)

 

 

한덩이 통돌을 깍아서 만든 불로문(경복궁역에 짝퉁 불로문이 있다)

이 문을 지나는 사람은 늙지 않고 장수한다는데, 조선왕조 임금님들중 장수하신 분이 그리 많지 않다.^^

 

 

불로문을 지나면 작은 연못이 있는데 애련지

숙종은 연꽃은 더러운 곳에 있으면서도 변하지 않고 우뚝 서서 치우치지 아니하며 지조가 굳고 맑고 깨끗하여

군자의 덕을 지녔기 때문에 이러한 연꽃을 사랑하여 새 정자의 이름을 애련정이라 지었다고...

 

 

부용지 주변 주합루 뒤쪽, 애련지옆에 두건물이 있다.

기오헌과 의두합은 효명세자가 지은 건물로 단청을 칠하지 않은 소박한 건물이다.
효명세자는 아버지인 순조의 명으로 대리청정을 하면서 안동 김씨의 세도를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노력했다.

이때 본보기가 되었던 분이 할아버지인 정조였으므로 이곳을 나라 일을 생각하는 장소로 삼았다

 

 

경복궁의 나무들은 임진왜란때 거의 모두 다 타버려 소실되었으나,

창덕궁의 나무들은 아직까지 지어진때부터 남아있는 나무들이 많다고 한다.

 

 

이 육각정자의 존덕정(1644년 건립)은 겹지붕이 특이하다.

내부에는 '萬川明月主人翁自序'라는 정조의 글이 새겨진 현판이 걸려있다.
옛날에는 다리 남쪽에 일영대(日影臺)를 설치하여 시각을 측정했다고도 한다.

 

 

 

궁궐내 유일한 초가지붕의 '청의정'

시골 농촌의 정자를 굳이 궁안에 지어놓은 데에는 왕이 왕자와 왕손들에게

벼를 가을걷이하고 나서 짚으로 이엉을 엮어 초가지붕 잇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왕실 가족이 농민의 정서를 체험하게 하려는 임금의 마음이 담겨 있는 곳이라고..

 

 

옥류천은 창덕궁 후원 북쪽 깊숙한 곳에 흐르는 개울을 가리킨다.
인조 14년(1636년)에 커다란 바위인 소요암을 깎아 둥근 홈을 만들어 옥과 같이 맑은 물이 바위 둘레를 돌아

폭포처럼 떨어지게 만들어 임금과 신하들이 여기에 둘러앉아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지었다고 한다.

 

 

창덕궁 안에 지은 유일한 민가 형식의 건물로 사랑채의 당호가 연경당이다

이는 순조 왕세자였던 효명세자가 사대부 집을 모방하여 궁궐 안에 지은 120여칸 민가형식의 집이다.

현재의 건물은 고종이 1865년에 중건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곳은 나중에 외국공사들을 접견하고 연회를 베푸는 등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연경당은 안채와 사랑채로 들어가는 문이 따로 있었는데, 이곳은 안채로 들어가는 문..

 

 

사랑채로 들어가는 문은 안채로 들어가는 문보다 더 높게 지어져 있다.

당시 남존여비 사상탓도 있지만, 남자들이 말이나 가마를 타고 지나가도록 조금 높게 지었다고 한다.

 

 

연경당의 사랑채

 

 

사랑채 앞에 이 돌은 말을 타고 내릴때 사용되던 하마석

 

 

이곳은 서재의 역할을 하던 선향재로 청나라 건축법을 이용해 벽돌로 벽을 쌓아 지었고

동판을 씌운 지붕에 도르래식 차양을 설치하여 이국적인 느낌이 드는 곳이다.

 

 

창덕궁의 향나무는 나이가 약 750살 정도로 추정되며, 2010년 태풍의 피해로 인해 손상이 되었다고 한다.

이 향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로 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 194호로로 지정·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2009년 갔을때 거의 비슷한 위치에서 찍은 사진..2010년 태풍전 향나무 사진)

 

1.비원이 아닌 후원

흔히 부르는 비원은 원래 명칭이 후원, 북원 또는 금원이었다.

일제가 의도적으로 후원을 낮추어 부르기 비원이라고 불렀는데

'비원'이 아닌 '후원'으로 불러야 된다고 한다.

 

2.우리나라 궁궐중 유일한 세계문화유산

창덕궁은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조선의 궁궐 중 그 원형이 가장 많이 남아 있고

자연과의 조화로운 배치가 뛰어 난 점이 인정되어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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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에 또 한번 창덕궁 후원 나들이 계획이 있어서 이날은 핸드폰으로만..

구경중 엄마 전화...아프시다고..

어제밤 수액맞으시고 오늘 오전 병원에 모시고 가서 피검사...

지난 여름부터 입맛을 잃으시고 자주 아프시다. 빨리 회복되셨으면...

교회 모자매가 하도 여기저기 출몰하니 정길동이라고..

정길동도 엄마 병원 모시고 갔다와 체력 완전 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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