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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이야기

목행리 그 시절(1)

 

충주 가는 길(국도)이 새로 생겼나보다.

운전치에 겁쟁이라 운전대 놓은지 10년이 넘었는데 운전대를 잡아보고 싶은 생각이 살짝 들만큼

차도 없고 한적한 국도...

동네 이름 재밌네. 야동리..^^평창 동막골은 아니고 동막리?^^

가는 길에 콩요리를 주로 하는 집에서 깔끔한 점심도 먹고...

카드기의 카드 용지가 고장나서 끙끙대는 주인장...남편이 고쳐주고..^^

고치는 사람이라니까 갸우뚱 한다. 기계도 고치고, 사람도 고치고..^^

 

 

새로난 목행대교..를 넘어 목행리를 지나 나 살던 곳으로...^^

(아니다 1996년 완공이니 새로는 아니지만, 나 어릴때 다리는 1961년에 지어졌던 다리였으니까..)  

 

(자료사진)

아버지는 충주비료공장과 오랫동안 함께 하셨다.

아버지는, 1960년 전후 한국인의 손으로 만든 첫 번째 화학비료 공장이었던 충주비료공장이 세워지며

연구실에 오시게 되어 80년대에 충주비료공장이 문을 닫기 얼마전까지 계셨었다.

충주비료공장은 1980년대초 문을 닫고, 이를 새한미디어가 인수하였었다.

2010년 회사는 코스모 그룹 (GS그룹의 방계임)이 인수하였다고 한다.

 

 

초창기 고학력 엘리트들도 많이 오게 되었고, 미국인들의 기술협조때문에 미국인들도 많이 살았기때문에

사택도 당시로는 상상하기 어려울만큼 서구화된 사택이었다.

내가 태어나자마자 처음 살았던 충주비료공장 사택 D-44호^^

 

 

바로 옆집은 필근이네 집이었고..^^

 

 

막내 여동생이 태어난 C-71호

 

 

 

B-9에서도 살았고...

 

 

미국인들이 살다 돌아간 미국식 주택형의 A호...

초등학교 다닐 무렵 아버지는 임원이셔서 A호에 살았었다.

 

(어느 블로거가 비어있는 A호에서 찍은 사진이라기에 퍼온 사진)

 

그때가 60년대였는데, 침대와 소파 사용을 하였고, 저렇게 페치카까지 있었다.

장작이나 연탄때던 시절인데 기름보일러로 난방을 하였고 냉장고와 오븐도 있었다.

중학교때 서울로 혼자 유학왔던 난 여름 방학이 되어 내려오면

아버지는 딸이 딸기철에 딸기 못먹었을까봐 딸기에 설탕을 뿌려 냉동했다가 주시기도 했고...

엄마는 감자와 고구마들을 노릇노릇 오븐에 구워주시기도 했다.^^

 

 

TV프로인 '글로벌 성공시대'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이야기가 나올때 이 A호가 나와 너무 반가웠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회고하기를 본인이 충주고 재학시절 (60년대 초반) 이곳 충비사택에 미국인 가족들이 거주하였는데,

그들이 지역 주민들을 위하여 영어를 가르쳤으며 그도 이들로 부터 배웠다고 회고하는 장면에서..^^

 

 

그 당시 구라부라고 불렀던 CLUB이 있던 자리에 다른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그 당시 구라부는 서양식 요리도 팔고, 실제로 사교댄스 파티가 열리곤 했던 기억들이 난다. 

 

 

외국인과 정치권의 고위층들이 내려오시면 묵고 가시곤 했던 영빈관은 폐허가 되 있었다.

 

 

가꾸지 않은채 방치된 연못이 쓸쓸하게 느껴졌다.

 

 

 

한적했던 길로 단발머리 날리며 자전거를 타고 쌩쌩 달리던 기억이 어제 같다면 거짓말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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