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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이야기

그립고 서러운 옛날 여름 이야기


     

    난 아버지덕에 유년시절을 황홀하게 보낸편이다.

    그당시 충주에 우리나라에서 처음 비료공장이 생겼을때여서

    관사(사택) 시설이 요즘으로 봐도 정말 황홀할 정도였으니까..

    60년대에 꿈도 꾸기 힘든 냉장고와 오븐까지 있는 사택이었다.

    정많은 아버지는 온갖 과일과 꽃들을 정성 스럽게 가꾸셔서

    우리 집은 동네에서도 부러워할만큼 아름다운 집이었다.

    나무 틀까지 세워 초록 수세미가 주렁주렁 열려 그늘진 앞뜰에 

    엄마는 여름이면 평상을 내놓으시고 놀러온 친구들에게

    감자를 오븐에 노릇노릇 구워 주시기도 했고...

    아버지가 정성스럽게 가꾼 딸기며 토마토 같은 과일들을 갈아

    꽁꽁 얼린 얼음 과자들을 만들어 주시기도 했다.

    친구들은 신기한 네모난 얼음들을 입안 가득 넣고 우물거리며

    돌아갈때에는 들고온 주전자에 얼음을 얻어 가곤 했다.

     


     

    한여름이 되오면 친구들네 원두막에 놀러가곤 했다

    서리를 하지 않아도 넉넉한 인심..^^ 

    친구네 엄마는 하얀 복숭아와 설익은 국광 사과뿐만 아니라

    (충주는 그때나 지금이나 사과와 복숭아 밭이 많았다)

    금방 딴 옥수수도 김 모락모락 나게 삶아 갖고 오시곤 했다.

    가끔은 강가에서 잡은 다슬기를 삶아 오시기도 하고...

    친구랑 난 시원한 원두막에서 엎드려 방학 숙제도 하곤 했는데..

    요즘도 그곳에 가면 넉넉한 그 원두막이 있을까....

     


     

    그러다가 공부를 위해 서울 큰집으로 유학을 오게 되었는데..

    명륜동 큰집은 그때 성균관대학생들 몇명을 하숙을 하는

    한쪽으로 우물가가 있는 전형적인 한옥집이었다.

    선풍기도 흔하지 않던 시절 뜨거운 한여름..

    대학생 하숙생 오빠들은 중2소녀는 꼬멩이로 봤는지

    웃옷을 훌렁 훌렁 벗고  ‘어~흑’ 하는 비명을 내지르며

    우물가에서 시원하게 등목을 하기도 했다.

    후하셨던 큰어머니는 우물에 담궈 두었던 수박을 쪼개어

    등목을 하고 난 하숙생들에게 나눠 주기도 하셨다.

    가끔은 큰어머니를 따라 '어름집'(?)에 가기도 했다,

    `어름’이라고 빨간 글자로 비뚤 빼뚤 씌어진 얼음집..

    큰어머니는 새끼줄에 얼음을 꿰어 사들고 오곤 했다.

    우물물 한바가지에 사온 얼음들을 조각내어 넣고

    미숫가루 훌훌 풀어 휘휘 저어 스텐 밥그릇 가득씩

    땀흘리고 돌아온 하숙생들에게 나눠 주시곤 했다.

     

         30년뒤 우리 아이들은 여름을 어떻게 추억할까...

     

      울타리에 올린 물오이 푸른 넝쿨 속에서
      꽃잎처럼 숨어 있는 물오이를 따서
      샘에다 한 한 시간쯤 담가뒀다가
      총총히 칼로 썰어 생채를 하여 먹는 맛
      참말로 그립고 서러운 옛날 얘기지.

       

      - 박정만, `그 옛날 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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