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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이야기

가을...


 

 

가을날/ 릴케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 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命)하소서
이틀만 더 남국(南國)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독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
깨어서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들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매일 것입니다

 


 

 가을의 기도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가을 엽서/ 이해인
 
하늘이 맑으니
바람도 맑고
내 마음도 맑습니다

오랜 세월
사랑으로 잘 익은
그대의 목소리가
노래로 펼쳐지고
들꽃으로 피어나는 가을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물들어
떨어질 때마다

그대를 향한
나의 그리움도
한 잎 두 잎
익어서 떨어집니다

사랑하는 이여
내 마음의 가을 숲으로
어서 조용히
웃으며 걸어오십시오

낙엽 빛깔 닮은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우리, 사랑의 첫 마음을
향기롭게 피워올려요
쓴맛도 달게 변한
오랜 사랑을 자축해요

지금껏 살아온 날들이
힘들고 고달팠어도
함께 고마워하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조금은 불안해도
새롭게 기뻐하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부담없이 서늘한 가을바람
가을하늘 같은 사람이 되기로 해요.
 
 

 

기다리지 않아도 때가 되면
올 사람은 오고
굳이 붙잡아도
떠날 사람은 떠나듯이
좀처럼 수그러질 것같지 않던 여름날의 무더위도
어느새 기세가 꺽여 고개숙이고
아침 저녁으로 부는 시원한 바람으로
머리끝까지 서늘한 기운을 느낄 때

  

ㅣ가을은 그렇게 온다 -이정하님의 시中에서 ㅣ

 

 

 
                                               
                                  교회 뜰에도 가을은 그렇게 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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