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 중보기도후 몇분들과 인천 차이나타운에 다녀왔다.
인천 화교는 약 130년 전인 1882년 임오군란 당시 청나라의 군인과 함께 온 40여명의 군역상인들이
이 땅에 정착하면서 그 역사는 시작되었다고 한다.
華僑를 한자대로 풀면 華란 중국인을 가르키고, 僑란 잠시 거주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즉 외국 영토에 거주하는 중국인을 모두 통칭하여 "華僑"라 일컫는다.
1909년의 청나라 헌법과 1929년의 중화민국 헌법에 의하면
"외국에 거주하면서 중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모두 화교라고 부른다." 라고 나와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화교는 2만명이 조금 넘으며 인천 차이나타운에는 5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인천차이나타운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북성동 주민센터(동사무소)에 주차를 하고...
(다른 공영주차장은 주차비는 있는 관계로 무료 주차인 이곳 신세를 졌다.^^)
중국인 만큼 붉은색을 좋아하는 나라가 있을까?
중국에서 붉은 색은 행운과 발전을 뜻한다고 한다.
짜장면(자장면이라 부르면 왠지 맛없어 보여서..) 거리...
선린문이라고 쓰인 파란색 패루(3패루)
(인천 차이나타운에는 중국 현지의 돌을 운반하여 만들어진 "패루"라는 출입문이 3곳에 있다)
패루를 지나 자유공원으로 가는 길...
누가 그렸는지, 헉헉 계단 오르막길에 익살스러운 돌그림...
너도 힘드냐? 나도 힘들다...^^
자유공원 팔각정을 지나...
한미수호통상조약(조미수호통상조약)은 우리 조선정부의 이홍장의 주선으로 1882년 5월 22일
인천의 제물포에서 조선측 전권대신 신현과 미국 측 전권공사 슈펠트(Robert W. Shufeldt) 간에
전문 14개의 관으로 이루어진 내용을 가지고 체결을 한 것이다.
한미수교 100주년이 되었던 1982년 이를 기념하고 세워진 탑이라고 한다.
자유공원은 1888년 개항장내에 조성된 한국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다
이 공원은 서울 탑골 공원보다 9년이나 앞서 생겼다고 한다.
원래 처음 이름은 만국공원이었으나 인천 상륙작전의 영웅 맥아더 동상이 이곳에 세워지며
공원 이름도 자유공원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인천 앞바다와 인천항, 인천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위치였지만, 날이 흐려서...
자유공원 아래 이곳은 인천시 역사자료관이다.
1965년부터 2001년까지 인천 시장의 공관으로 사용되었었다고 한다.
지금은 인천의 역사 자료의 발굴과 수집하여 정리, 발간하는 시사편찬위원회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은 (구)제물포 구락부
제물포구락부의 본 명칭은 제물포클럽이지만 클럽(Club)이 일본식 가차음인 구락부(俱部)로 불린 것이라고..
제물포구락부는 개항기 이들 국가 사절들의 사교장이었다고 한다.
지붕을 양철로 덮은 벽돌식 2층 건물로 러시아 건축가 사바친이 설계해 1901년 6월 22일 문을 열었다.
1993년 7월 6일 인천시 유형문화재 17호로 지정됐다.
이곳에서 보름마다 정기적으로 무도회가 열려 참가자들이 술·음식을 곁들여 춤을 즐겼다고 한다.
내부에 바와 테이블 등을 갖춘 사교실, 도서실, 당구대 등이 있었고 실외에는 테니스코트가 있어
당시 한국인들은 꿈도 꾸지 못할 호화로운 시설이었다고 한다.
2007년 새롭게 단장 당시 시대 상황을 소개하는 영상스토리텔링 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고 한다.
우리도 우아하게 비록 자판기 커피와 녹차지만 구락부의 여유를 잠깐 즐겼다.^^
아줌마들이 평소 집근처에 있는 운동기구도 소 닭보듯하더니만, 가던 길 멈추고 열심히 운동하는척을..^^
와우~~저 나무 나이는 몇살이나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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