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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이야기

역사는 승리자 편에서..포석정

 

경주 시티 투어..처음 들린 곳은 포석정

해가 잘드는 곳이라 그런지  연두빛을 찾기 어려운 노오란 일색의 은행잎이 너무 화려했다.

 

 

포석정은 신라 왕실의 별궁으로, 역대 임금들이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포석정(鮑石亭)의 포(鮑)자가 ‘전복 포’..

마치 바다의 전복껍데기 둘레와 같은 모습을 담고 있다고 붙인 이름이라고..

 

 

지금은 정자 등의 건물이 모두 없어지고, 석조 구조물만 남아있으며 화강석으로 만든 수구(水溝)의 길이는 약 6m이다

임금은 이곳에서 신하들과 더불어 잔을 띄우며 시를 읊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경애왕(景哀王) 4년(927) 왕이 후백제 견훤(甄萱) 군대의 습격을 받아 최후를 마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55대 경애왕(景哀王)이 나라가 망해가는 줄도 모르고

서기 927년 음력 11월에 연회를 열어 귀족들과 술마시고 즐기다 후백제 견훤(甄萱)의 침입으로

왕이 자결을 강요당했다고 되어 있다고 한다.

기록대로 음력 11월이라면 물이 얼어 술잔을 띄울수도 없고, 밖에서 연회를 베풀기 어려운 때..

또한 두달전인 음력 9월에 이미 견훤이 경주 인근인 영주까지 쳐들어와서

경애왕이 왕건에게 급히 원군을 청했던 상황이었다.

조국이 누란의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과연 경애왕이 몰상식한 술판을 벌였을까

아마도 경애왕이 국가의 안위를 위한 제사를 지내고 음복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가이드 코멘트..'역사는 승리자 편에서 씌여진 것'...

 

 

 

 

 

어제 '경주 시티 투어'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는 일행들..

캐나다인 가족들도 있었는데 사진밖에 있어서..

 

 

바로 위에 까치밥 같은 감 하나가..^^

 

 

 

근데 까치밥이 아니라 감나무가 엄청 많았고, 주인없는(?) 감들도 많이 열려 있었다.

 

 

심지어는 포석정 근처 집에도 엄청많은 감들..(여기도 철없는 개나리..보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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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적 1호가 포석정이라고 한다.

포석정은 일제감정기(1933년)때 사직1호로 지정했었다고 한다.

일제는 포석정을 잘 보존할려고 애쓰며 사적 1호로 지정하였다고.. 

비운의 역사를 알리며 식민지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은연 중 알리려는 의도였다고..

 

사실 국보 제1호나 보물 제1호라고 하는 '문화재 지정번호'는 말 그대로 문화재를 관리하고

그것들을 식별하기 위해 부여된 일련번호(serial number)일 뿐,

그 번호가 앞선다 해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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