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달빛 이야기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저녁 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달 스무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구절초이었음 해.
    내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꽃 피우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
    콩꽃 팥꽃이었음 좋겠어.
    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화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 없는 사랑 말고
    저무는 들녁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갈 순 없을까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깍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 썰물보다는
    물오리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이었음 좋겠어
    이렇게 손을 잡고 한세상을 흐르는 동안
    갈대가 하늘도 크고 먼 바다에 이르는 강물이었음 좋겠어
    詩 도종환
     

'달빛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물..사람의 마음  (0) 2005.02.18
그림자 찾으로 갔다 온 날..  (0) 2005.02.17
연탄한장  (0) 2005.02.16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0) 2005.02.16
Yesterday once more  (0) 2005.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