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겨울 반양식(?)이라는 김장을 끝냈다.
우리 어릴때만해도 집앞마당 묻어 놓은 김장독과
창고 가득 쌓인 연탄이 서민들의 풍요의 상징이었다.
60년대였음에도 아버지덕에 오히려 어린 시절에는
회사 사택에서 겨울에도 집에서는 반팔입고 살만큼
아까운지 모르고 기름 보일러를 틀고 살았는데..
중학교에 오면서 엄마와 동생들이랑 서울로 이사왔다.
그때만해도 그곳의 변변치 않은 교육환경때문에
서울로 유학온 셈..
난생처음 연탄을 갈아보던 날 엄마에게 혼이 났다.
왜 그때 마음에는 불씨가 남아 있는 연탄이 위로가야
연탄이 잘 붙을꺼라 생각했는지..
"연탄 갈았으니 조금있다가 연탄 구멍 막아라~"
시장 가시며 하시던 엄마 말씀도 까마득하게 잊고
뜨끈뜨끈한 아랫목 좋은 줄은 알고 엎드려 책보다가
홀라당 다타버린 연탄땜에 또 혼나기도 하고..^^
개구쟁이 남동생은 엄마 몰래 연탄 아궁이위에
스뎅국자를 올려 놓고 뽑기 하다 다태워먹기도 하고..
쫀드기인지 연탄구멍 사이로 구워 먹기도 했다.^^
가끔 시장에 불붙힌 연탄을 사러 가기도 하고..
군의관때 TV문학관에나 나올것 같은 산골에 살았다.
60년대 지었다는 탄광촌이 근처인 산골 부대 관사.
아궁이마다 연탄을 넣어야 하는 곳..
까만 물을 먹으며, 까만 연탄불을 갈며
그곳에서 큰애도 태어나 백일까지 살았다.^^
전속되면서 겨우 연탄에서 벗어나나 했더니
그곳에서도 역시 연탄과 2년을 같이 살았다.
애기였던 큰아들은 그 매끈한 연탄 감촉이 신기한지
엄마의 무관심을 틈타 두손을 까맣게 만들곤 했다.
연탄이랑 친구였던 큰아들은 오히려 뽀얀 피부인데
연탄하고 상관없이 자란 작은 아들은 까무잡잡.^^
날이 쌀쌀해지니 쓸데없는(?) 옛생각이 많아지고
횡성수설 옛이야기 늘어 놓았네요.
안도현님의 '연탕 한 장'이라는 시에 곡을 붙인
안치환의 '연탄 한 장' 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기꺼이 연탄 한장이 되어
따뜻한 삶과 추억이 되어 주었으면...
참..연탄의 구멍은 몇개일까요?^^
연탄한장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히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2004년 12월 '예우'에 썼던 글)